꼼꼼한 성격인 나는 아이들의 보물 같은 말들을 짤막하게 노트에다 기록했다. 그 순간이 지나가면 기억할 수 없는 말들이다. 기록하면서도 행복하고, 다시 읽으면서도 행복한 말들의 잔치다. 이다음에 아이들이 안 예쁜 말을 하거나, 힘들어할 때 보여줘야겠다.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인지에 대해 잊지 않게 해주고 싶다. 오늘도 엄마는 아이들의 말을 기록하는 꼼꼼한 서기(書記)다.

대부분의 사람은 나이가 들면 말을 많이 하고 싶어 한다. 외로워서일까? 누군가와 소통이 필요해서일까? 주변에 70대 후반의 홀로 사시는 고모님이 계신다. 매 ...더보기꼼꼼한 성격인 나는 아이들의 보물 같은 말들을 짤막하게 노트에다 기록했다. 그 순간이 지나가면 기억할 수 없는 말들이다. 기록하면서도 행복하고, 다시 읽으면서도 행복한 말들의 잔치다. 이다음에 아이들이 안 예쁜 말을 하거나, 힘들어할 때 보여줘야겠다.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인지에 대해 잊지 않게 해주고 싶다. 오늘도 엄마는 아이들의 말을 기록하는 꼼꼼한 서기(書記)다.

대부분의 사람은 나이가 들면 말을 많이 하고 싶어 한다. 외로워서일까? 누군가와 소통이 필요해서일까? 주변에 70대 후반의 홀로 사시는 고모님이 계신다. 매 주일 예배를 마치고 항상 고모 댁에 들른다. 한 주 동안 발생한 사건들로 이야깃주머니가 가득하다. 경청이 필요한 시간이다. 들어드리고 공감해드리고 가끔 조언도 해드리고 같이 식사도 하고 오면 마음이 포근하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계획이 아니라 그저 하고 싶은 일이라 도전을 한다. 그러다 보니 계획하지 않았던 소중한 기회들도 찾아온다.
만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바람 따라 움직이는 나뭇잎을 바라보는 것으로 내 삶을 채우면 된다.
반쯤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 사이로 따스한 햇볕과 봄과 여름 그 어디쯤을 알려주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온다.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들이 춤을 추듯 한들한들하다. 내일이면 까슬까슬 기분 좋게 말려진 옷과 마주할 수 있겠지. 누군가 ‘좋은 신발은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라고 했던가. 깨끗하게 세탁된 단정한 옷은 설레는 하루로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어느 날 남편에게 “당신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야.”라고 말한 적 있다. 남편은 그 말이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 말을 한 뒤로 몇 달 동안 남편에게 “친구끼리 이러면 안 된다.”, “너 친구한테 왜 이러니.” 같이 장난 섞인 서운함의 표현을 들어야만 했다. 남편이 생각하는 친구의 의미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달랐던 것이다.
지나온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우리 부부는 함께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에겐 상상할 수 없이 수많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의리를 잃지 않는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이고 싶다.

이 세상에 나에게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란 없다. 일만 하며 가족을 위해 살아온 엄마를 위해서 남은 인생 원 없이 쉬라고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동안 딸과 함께 살지 못했으니깐 남은 인생 딸과 손자와 함께 살라고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마음이 아프면 구석으로 도망쳤다. 컴컴한 곳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묻고 나를 숨겼다. 자신을 내팽개치는 것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냈다. 내가 선택한 방식은 나와 함께 긴 울음을 우는 사람에게까지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제 삶이 입맛을 빼앗아 가면 붉은빛이 좋은 돼지고기 한 근을 산다. 시큼하게 잘 익은 김장 김치 한 포기를 꺼내 큼직하게 썬다. 두부를 먹기 좋게 자르고 대파의 흰 부분을 송송 썰어 보글보글 찌개를 끓인다.

여자는 남자의 말 한마디에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지금도 남편의 말 한마디에 웃고 우는 그런 여자이다. 왜냐하면, 난 아직도 남편과 연애 중이기 때문이다.

청소를 한다는 것은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함도 있지만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사를 위해 청소를 하고 나면 짐들이 들어온다. 그리고 각 화장실마다 디퓨저를 하나씩 두고, 방마다 화분을 두면 진정한 이사의 마무리가 된다. 이렇게 다시 꽃을 피울 화분들을 키우기 시작한다.

설거지할 때는 설거지만 한다. 어떤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을 알아차리고 설거지하는 지금 여기로 돌아온다. 빨리 해치워야 하는 일로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오롯이 집중해 보자.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 흐르는 물소리, 식기 달그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있는 그대로 음미하고 감상한다. 손에 닿는 식기의 감촉을 느낀다. 설거지 수세미 감촉도 느낀다. 헹구는 물의 온도를 느낀다. 리듬을 타면서 즐겁게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하면서 내 안에 남아있던 생각의 찌꺼기, 감정의 흔적들도 함께 씻어낸다.

엄마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13년 만에 겨우 주어진 것 같다. 이제라도 엄마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공부해 놓아야겠다. 이기적이라 해도 좀 더 건강해져서 아이 옆에 서고 싶다. 자신을 아끼는, 그래서 아이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열심히 산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 많니? 바쁘게도 산다.”라는 말을 듣고 있다. 열심히 산다. 열심히 산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마음이 불편했다.
왜 불편할까? ‘열심히’라는 말은 ‘애쓰고 산다.’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일 것이다.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