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마흔두 번째 소설선, 이주란의 『어느 날의 나』가 출간되었다. 주인공이 3개월에 걸쳐 써내려가는 기록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소설은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서로를 아끼고 살아가는 이들의 연대하는 삶을 그리고 있다. 삶을 계속 살게 하는 힘은 완벽한 이해나 뜨거운 사랑이 아닌, 어떤 존재를 염려하는 애틋한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 작품은 2021년 『현대문학』 11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것이다.

“오늘의 나는, 그 어느 날의 나보다 괜찮다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는 할머니와 살던 집에서 나왔다. 집주인한테 받은 보증금은 그동안 병원비를 대느라 빌린 돈을 갚는 데 썼다. 그런데도 내 앞에는 수천만 원의 빚이 남아 있었다. 선배 언니는 3등에 당첨된 복권을 나에게 주면서 이걸로 방을 얻으라고 했다. 그 돈으로 보증금 100에 월세 25만 원짜리 방을 얻었다. 운 좋게도 카페에 취직을 했고 열심히 빚을 갚으며 보증금 500에 월세 40만 원짜리 방으로 옮겼다. 방 두 개에 주방이 달린 작은 집. 나는 이제 그 집에서 선배 언니와 함께 산다. 부모는 다르지만 우리는 가족처럼 지낸다. 불행했던 기억이 여전히 언니와 나를 자주 울게 하고 가끔 슬픔이 밀려올 때도 있지만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 그게 사는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지금 나는 그 어느 날의 나보다 괜찮다. 내가 가진 것들을 생각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