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역사에서 유사한 형식과 내용을 찾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앞선 이론이나 견해를 발판으로 삼지 않는 이론이나 견해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찮은 견해일지라도 또는 훌륭한 이론마저도 모두 앞선 이론이나 견해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앞선 이론과 견해가 뒤이은 이론과 견해와 닮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 윤리의 관점과 동양의 유교 윤리의 관점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사하다. 특히 두 견해에서 ‘중용’의 개념은 매우 흡사하며 거의 차이가 없을 만큼 유사하다. 이런 유사성 때문에 유교의 윤리적 관점을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 방식의 덕 윤리의 하위 종류로 이해하려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
서양의 덕 윤리와 유교의 윤리학이 매우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두 견해 모두 덕에 대한 정의와 성품 함양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이론의 유사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차이점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문적으로 중요한 일은 유사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차이점을 찾는 것이다.
이 책은 유교의 윤리가 서양의 덕 윤리의 한 부류에 불과하다는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나아가 유교의 윤리를 이런 관점으로 파악한다면, 유교 윤리가 가진 고유한 독창성을 파악하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유교 윤리의 참모습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서양의 관점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양의 관점에서 벗어나 유교 윤리의 고유한 특성들을 이해하고자 할 때 유교 윤리의 독창성과 우수성이 드러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유교 윤리는 서양의 덕 윤리의 하위 종류에 불과한 이론이 아니다. 유교 윤리의 고유한 이론의 특성을 이해하고 적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근거도 없이 서양의 관점을 막연히 동조하여 적용하는 것은 유교 윤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방해할 수 있다. 유교 윤리를 독창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이 방법을 먼저 받아들여 고찰하여야 한다. 이 책은 유교 윤리의 독창성을 이해할 수 있는 적합한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그래서 덕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을 통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덕에 대한 한층 세련된 이해가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