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조선과 중국 유학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단 중의 이단을 다룬 것이라 할 만하다. 왕학, 즉 양명학이 조선유학사에 수용되어 하나의 학파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주자학파의 일부에서는 이를 이단으로 비판하였다. 특히 양명학 중에서도 ‘광선(狂禪)’으로 치부되는 양명 좌파는 극단적 이단으로 비난받았다.”

이 책은 혜문보의 『좌파왕학』을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경학연구팀이 2년간 강독한 결과물이다. 『좌파왕학』은 일종의 도학혁신운동, 반주자학을 이끈 왕양명이 완성한 양명학에 대한 책으로, 양명학 중에서도 양명학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광(狂)의 정신을 더욱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양명 좌파에 관해 정리한 것이다.

이 책에서 혜문보는 좌파왕학의 특징으로, ‘도학의 혁신운동’, ‘자유로운 정신’, ‘하층사회와의 동화’를 든다. 즉 혜문보가 말하는 좌파의 의미는 자유로운 정신과 하층사회와 동화를 중심축으로 사상의 혁신을 기도하는 세력이다. 양명 좌파는 양명학 내부에 태동하고 있던 자유의 기상을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종종 유교의 내부에서 뛰쳐나가 도교 혹은 불교와 자유롭게 교섭하였으며, 실제 삶 속에서 승려처럼 지내거나 하층민과 함께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일자무식인 하층민에서 양명 좌파의 중요 인물들이 나오기도 했는데 중국학술사를 넘어 동아시아학술사에 다시 보기 어려운 형태의 정신적 자유와 삶의 평등을 추구한 것이다.

그러나 양명 좌파의 학문은 후대 정권에서뿐 아니라, 같은 유학자들에게조차 외면을 당하여 오랜 시간 비판 혹은 소외되었다. 명대 만역 연간에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명이 망하고 청이 서면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지식인과 조정으로부터 배척당하거나, 아예 도외시된 것이다. 그러다가 근대에 들어와서야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그 시발점이 바로 혜문보의 『좌파왕학』이다.

양명 좌파 이후,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주자학을 중심에 두고 고증학, 실학, 고학 등의 새로운 학풍이 일어났지만, 양명 좌파와 같은 파격적 지향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 양명 좌파의 사유는 동아시아학술사의 소중한 지적자산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양명 좌파를 사상사의 전면에 등장시킨 책이다. 양명학 연구자, 명대의 사상사?사회사 연구자, 역사방법론의 연구자들에게 의미 있는 암시가 되어줄 것이다.